2023, 변방의 어느 소타트업에선 무슨 일이 있었을까?

Song Yongseok
7 min readDec 29, 2023

이제는 연기장(年記-帳; 한 해 중에 있었던 일이나 감상을 적는)이 되어버린 블로그 취지에 딱 알맞게(?) 2023 발행되는 처음이자 마지막 포스트로서 올 한 해를 짧게 되돌아보고 기록으로 남겨보려 한다.

조직

지난 해 있었던 긴 채용과의 전쟁 끝에 우리 조직은 결국 완전한 원격 근무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김해에서는 도저히 개발자 채용이, 아니 나아가서 기획자, 디자이너, 어느 직군이든 경력 수준을 차치하고서도 그저 지원서를 충분히 받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지방 소재 스타트업에게 원격 근무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기업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이라고 판단했고, 지금 떠올려봐도 여전히 훌륭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한시적으로 존재하던 주 1회 사무실 출근 조건도 이내 던져버렸다. ‘이게 과연 가능할까? 괜찮을까?’ 처음이 어렵지, 동료분들은 곧잘 적응했고 지금은 기획자, 개발자, .. 함께 일하고 계신 몇 동료분들이 수도권에 계시다.

개인적으로 전통적인 K-회식 문화에 대해 여러모로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는데(나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배우자의 나라에선 회식 문화가 조금 달라서인지 저녁 회식 일정이 잡힐 때마다 가정의 평화가 다소 위협ㅂ… 후략), 그런 나조차도 원격 근무하게 되면서 너무 그리운 것들이 있다. 동료분들과 함께 하던 점심 식사, 그리고 다 함께 갖는 음료 한 잔의 여유, 그 가운데 피어나는 이런 저런 참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 꽃들, 업무일랑 잠시 잊고 사람 대 사람으로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들. 이 하루 30분도 채 안 되는 사소하지만 사소하지만은 않은 잡담들이 조금은 더 사람 냄새 나는 끈끈한 팀이 되는 데 있어 커다란 밑거름이 되어준다고 믿는다. 나는 낭만이 가득 흐르는 개발팀을 만들고싶다. 일은 때때로 지치고 힘들어도 긴 모험을 즐길 줄 아는 호탕하고 왁자지껄한 낭만개발팀. 그런 측면에서 먹방 찍듯 화상으로 리모트 회식도 해보고 게더타운도 해보고 이런 저런 시도들을 해봤으나 결국 아직 이렇다 할 보완책을 찾아내진 못한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잡담이 잘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이랄 것이 있다. 딱히 사전에 계획되어 있지 않은 주제, 그리고 시간에 자연스럽게 일어나야 거부감이 덜하고(e.g. 매주 수요일 13시에는 30분 간 티타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가 주는 어떤 의무감), 무엇보다도 청자가 지금 대화 가능한 상태이다, 업무에 크게 방해되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화자가 편하게 인지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는 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가령, 옆자리 동료가 방금 막 우스꽝스럽게 재채기를 했다든지, 펜을 바닥에 떨어뜨렸다든지,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이제 막 다시 돌아와 앉았다든지, 사무실에서 함께 근무했더라면 알아차릴 수 있는, 대화의 포문을 열기 좋은 순간들을 쉽게 포착할 수 있는 반면 모든 팀원이 원격으로 근무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잡담 환경을 조성하겠노라 모두가 하루 종일 캠을 켜고 일을 할 것도 아니고(물론 물리적으로 가능한 방안이긴 하겠으나…) 영 마땅찮다. 하다 못해 회의야 갑자기 불쑥 요청할 수 있더라도(물론 가급적 이런 회의 요청도 지양해야겠고) 잡담을 불쑥 요청할 수는 없잖은가. 이것은 내년에도 나에게 큰 숙제가 될 예정이다.

제품

대표님께서 밑도 끝도 없이 창구(구글플레이가 중소벤처기업부, 창업진흥원과 공동으로 진행하는 국내 중소개발사 및 스타트업 상생 지원 프로그램)에 도전해보자고 하셨던 것은 지난 3월이었다. 우리는 이미 4월, 5월 개발해나갈 에픽들로 대략의 일정들이 쭉 정해져있었고 처음에는 음….. 네?? 아니 잠깐만요 반응이었지만 잘 생각해보니 창구 지원한다고 해서 우리 서비스 개발 방향이 크게 휘둘릴 것은 전혀 없어보였고, 또 모두가 바라볼 수 있는 구체적인 단기 목표가 하나 생기는 것은 동기부여 등 많은 부분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키리라고 생각했으며, 끝으로 우리가 경합에서 딱히 좋은 성과를 이뤄내진 못하더라도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도, 또 제품도 무조건 더 성장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었다. 잃을 게 없었다.

그렇게 1.5개월 정도를 바짝, 정말 바아-짝 달린 결과, 우리 모두의 예상을 깨고(?) 무려 TOP 10(100개사 이상 참여한 데에서 8위!)에 드는 쾌거를 이뤄냈다. 스프린트가 잘 끝난 데 있어서는 동료분들 모두 만족도가 아주 높았지만 경합 결과에 대해서는 정말 일말의 기대가 없던 우리였는데 꽤 좋은 성적이 나와버려서 참 기뻤고, 제품에 대한 내부에서만의 믿음 같은 게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어떤 인정이 많이 필요했던 시기였어서 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다 같이 이뤄낸 이 작은 성공의 경험이 어찌나 소중한지…

작고 소중한 우리 서비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경험이 대표님의 밑도 끝도 없는 무계획 창구 질러보자 슬랙 메시지 하나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이 새삼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들었다. 첫째, 역시 나는 아무래도 창업가가 되긴 힘들겠다. 그런 일은 아마도 높은 확률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둘째, 하지만 뭔가 적극적으로 판을 벌이고 그림을 그리는 창업가 옆에서 이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매우 실질적인 계획을 잡고 우선순위를 결정하며 비즈니스 임팩트 큰 것들부터 실행에 착착 옮기는 역할은 능히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이 붙었다.

창구의 성과에 힘입어 여름엔 35:1의 경쟁률을 뚫고 롯데벤처스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L-CAMP’ 11기 & 부산 5기에 최종 선발됐다. 투자와 함께 각종 멘토링 등 이런 저런 혜택들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내게 가장 피부에 와 닿았던 것은 역시 단연 AWS Activate 프로그램을 통한 USD$10,000 상당의 credits이었다. 소타트업 CTO에게 이만한 깜짝 선물이 또 있을까 싶었고 덕분에 비용 문제로 미뤄두던 몇몇 인프라 리소스 이슈를 수월히 개선할 수 있었다. 상당 부분은 RI(Reserved Instances), 그리고 SP(Saving Plans) 활용해 내년에 발생할 클라우드 비용에 대비하기도 했다.

AWS Activate USD$10,000 credits

지금 우리 서비스는 또 한 번 커다란 변화의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동네 마트에서 발행한 디지털 할인 전단, 그러니까 결국 광고 홍보물인 이 콘텐츠를 앱 사용자들이 소비하면 동네 마트에서 디지털 할인 전단을 발행하며 지불했던 비용의 일부를 해당 마트 잠재적 소비자들인 사용자들에게 리워드로 지급하는 방향의 변화이다. 우리가 거리에서 쉽게 마주하는 아이들 학습지, 또는 교회 판촉 행사 등에서 설명지와 함께 받아보는 사탕, 포스트잇, 풍선, 물티슈 등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을까. 내년에는 어떤 서비스를 만들어가게 될지, 또 어떤 변화들을 마주하게 될지 설렘 반, 두려움 반이다.

목표

지난 해 회고에서도 언급했지만 여전히 나의 목표는 CTO 물러나기이다. 그러니까 올해도 나는 실패했다는 소리. 그로켓 서비스를, 부에노컴퍼니를 내 역량을 초월하는 충분히 큰 서비스, 또 충분히 큰 회사로 만드는 데 변명의 여지 없이 깔끔하게 실패했다.

안타깝지만 내년까진 내가 장기집권(?) 해야겠고 <2024, 변방의 어느 소타트업에선 무슨 일이 있었을까?>를 작성하게 되는 시기에는 CTO 물러남을 위한 일말의 단초, 어떤 희망의 싹을 조금이라도 볼 수 있기를 마음 다해 기원한다. 이 조직의 성장이 너무나 무자비하게 가파르고 또 빨라서 내 개인의 성장 따위가 도저히 어떻게 감당해낼 수 없을 만큼 서비스가, 그리고 회사가 잘 되길 바라 마지않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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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 Yongs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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